외교안보 분야 보수주의자들의 북핵문제에 대한 우려

만약 의견이 다른 사람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현재 문재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북핵 해법의 무엇에 대해서 반대하며 무엇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정리된 상태로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씁니다.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다음의 몇 가지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1. 제 개인 의견에 기반해서 쓰겠지만, 한편으로는 꼭 제 생각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나름 지지세를 얻고 있는 의견들도 망라해서 쓰고자 합니다.
  2. 타협이나 의견의 불일치를 인정할 수 있는 영역과, 이것은 현재 드러난 증거로 볼 때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보는 영역도 가급적 명시하고자 합니다.


먼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상황에 대한 인식으로 시작합시다.


한반도 외교 안보 문제의 정통주의자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봅니다. 또는 거래를 통해서 포기시키려고 한다면 지불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아서 사실상 거래를 통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드러난 증거를 통해서 볼 때, 다른 의견이 존재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무엇을 희생했는가? 북한이 핵개발에 매진한 것은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닙니다. 30년에 걸친 대장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국민 수 십 만에서 어쩌면 백만을 구휼하는 것을 포기했으며 아사를 방치했습니다. 이것이 핵을 보유하기 위한 북한의 '지불의사'였습니다. 이보다 큰 것을 한미동맹이 제공할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얻은 핵이라는 카드를 손에 쥔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70년 전 자신이 선제공격했던 (따라서 어그로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놓은) 남한은 북한의 45배의 경제력, 두 배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래식 전력으로는 북한은 이제 다시는 남한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남한이 노태우 정권기의 동방정책을 시작으로 러시아, 동유럽, 중국과 수교하는 반면 북한은 중국과도 미묘한 관계이며 사실상 동맹 수준의 우방이 전무하고, 세계적으로 불량국가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외교, 군사, 경제 어느 측면에서나 북한은 남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실패한 국가입니다. 북한은 핵카드 한 장으로 이것을 모두 타개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실패한 국가 북한이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은 세계에서 감히 비교 대상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자국민에 대한 가혹한 탄압, 핵을 기반으로 한 우상화 선전 등입니다. 북한에게 핵은 미국이 한반도에 개입하지 못하게 위협하는 수단이자, 북한 내부에서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금송아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북한 지도층은 기호지세의 상태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 잔인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실패하면 역으로 자신들이 민중에게 맞아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이들에게 매우 생생하고 현실적인 공포라는 증언이 많습니다.


북한이 지불해야 할 것을 살펴봅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습니다. 그간의 행적을 보면 매우 합당한 대우죠. 미국은 북한이 핵폐기 과정을 하나 밟으면 그만큼 보상하는 단계를 점진적으로 진행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펴왔습니다. 북한이 딱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개소리로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며 먹튀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질렸거든요. 미국은 북한이 핵을 철저하게 폐기한 다음에야 보상을 하거나, 적어도 너무 자잘한 단계를 나누지 않고 최소한의 단계로 일을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완전한 북한 핵폐기와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북한이 NPT 탈퇴하고, IAEA 사찰 죄다 내보내고, 완전히 나라 문을 걸어잠그고 핵개발한지는 15년이 되어 갑니다. 핵물질은 콜라캔 사이즈까지 축소시켜서 보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 펩시콜라 캔이 한 개도 없게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요?

결국 북핵의 폐기는 북한에 있는 핵무기를 폐기하는 일보다, 북한이 항구적으로 미국에게 불시점검을 허용하는 문제가 됩니다. 핵이 없는 상태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감시받는 상태를 만드는 문제가 되는 것이죠.

이것은 북한이 정상적인 주권국가였다면 정당화되지 못할만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들어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무조건 개방하라? 오직 북한이 완전히 rogue state로 찍혔기 때문에 설득력을 가지는 이야기죠.


결국 거래를 통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려면? 저런 항구적인 무차별적 감시체제를 성립시키면서, 동시에 내부 통치의 안정과 북한이 적화통일 사업을 벌일 때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모두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한미동맹이 이것을 지불할 수 있는가? 허황된 소리죠. 애초에 물리적으로 가능한지부터가 의심스러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어쩌다가 미국의 동맹국 지위와 핵우산을 잃고 재래식 전력은 남한에 뒤떨어진, 그러나 수 십 기의 핵탄두와 투사체를 가진 북한과 1:1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경우 결국 남한은 북한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지 못하고 매번 핵위협게 굴복해서 삥뜯기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이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로 봅니다.


문재인 정권은 '중재자'를 자처했습니다. 진짜로 중재가 이뤄졌다면, 위의 내용이 빼먹은, 그간 북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무엇인가를 문재인 정권이 착안해내서, 절묘한 타협점을 찾아냈다는 말이겠죠.

그러나 그런 것이 있었다면 판문점 선언 때

  • '북한'이 아닌 '남북한'이
  •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 구체적 조항이 전무한 채로 노력한다라는 추상적인 문구로 마무리
되었으면 안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이 저런 천재적인 타협안을 만들었다는 근거가 희박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중재가 아니라 보증이죠. 우리는 지금 북한이라는 세계에서 계약을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가장 유명한 신용불량자에게 연대보증을 서는 것인데.. 정통주의적 입장에서 대단히,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결국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로서 실제로 가능한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 것입니다.

  •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_-
  • 어영부영 대충 웃으면서 사진 찍고 추상적인 말만 교환한다.
  • 미국의 안전만 보장되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다.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경우를 봅시다. 이 경우에 한국은 여전히 북한의 핵인질 상태로 남게 되고, 또다른 문제는 미국에게 진짜로 군사옵션만이 남는다는 점입니다. 정통주의자들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통주의자들은 평화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평화라는 상태를 만드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 경우에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은 극히 높아지고, 남한에 거대한, 아주 거대한 불똥이 튈 상황을 염려합니다.

두 번째로 어영부영 대충 웃으면서 회담 잘 되었다고 자화자찬하고 국내에 선전하지만 실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을 봅시다. 이 경우 사실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보다도 나쁩니다. 한국은 여전히 북한의 핵에 인질로 잡혀 있으나 미국 정권은 별 행동을 하지 못하겠죠. 이미 성공한 회담이라고 자화자찬했는데 거기다 뭘 애써서 더하기는 웃기지 않습니까?

마지막도 대단히 고약한 상황입니다. 북한이 미국에 핵을 날릴 수 있는 투사체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만 폐기하고 미국은 회담 성공을 선언하고, 한국과 일본은 핵인질로 남는 상황이죠. 다만 저는 이 상황까지야 가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안심을 준 것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아베입니다. 얼마 전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이런 일이 없게 해달라는 약속을 받았었죠.


대신에 무엇을 했어야 했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점이 비판의 고삐를 늦추게 하는 유일한 부분이죠. 그러나 이러한 점은 지적할 수 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한이 대화공세로 나오는 것은, 일단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의도를 짐작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는 중국이 동참한 대북제재가 유례없는 고통을 주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북한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핵카드를 이제 휘두르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유례없는 수위로 미국이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위협을 휘두른 것이죠.

결국 이 대화는 북한이 원하던 것이고 한미동맹이 이 문제에 애닳아하는 행태를 보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는 최근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미북회담 자체는 열릴 것이라고 보는데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판문점 회담 때는 북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미북간의 회담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를 다루는 전초전이 되었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안건들이 매우 중요한 것들이었는데, 판문점회담에서는 아예 방치되었습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임을 명시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남한에는 단 한 기의 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란 대체 무슨 뜻일까요?
  •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주체가 남북한이 아니라 북한임을 명시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습니다. 남한은 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먼저 남한의 주한미군이 보유한 전술핵을 포기하는 성의를 보였습니다. 북한은 상응하는 성의를 보인 바가 없습니다.
  • 위의 두 항목은 결국 다음과 같이 다시 정리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라는 단어가 대체 무슨 뜻으로 정의되는가를 밝혀야 합니다.'
  •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의 능력을 가진 이때, 결국 북핵폐기는 핵을 없애는 행위가 아닌 북한을 항구적으로 무작위로 사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을 명시화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 중 어느 것도 없었다는 점은 결국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 낸 '중재안'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연대보증이 전부였다는 의심을 강하게 합니다.

더구나 이 보증의 근거도 대단히 허약합니다. 스위스물 먹은 김정은의 내면에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는 분석?이 사실상 근거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김정은이 그런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핵개발을 늦춰서라도 자국민을 먹여살리고, 자국민 20만명을 가축만도 못한 대우로 가혹하게 강제노역을 시키다가 사망하면 무덤도 없이 폐기하는 행위를 그만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기꾼을 보증 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 이상 결국 북핵문제의 해결은 미북정상회담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 미국의 군사행동과 그에 따른 북한의 굴복. 이건 결국 레짐체인지로 이어지겠죠.
  • 군사행동이 아닌 다른 수단에 의한 레짐 체인지
전자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후자에 대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훼방을 놓는 행동은 결코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겁한 평화는 결국 다행스러운 경우에는 호구, 운 없는 경우에는 노예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완용도 스스로는 비겁한 평화를 이뤘다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완용의 비겁한 평화에 동의하는지 여부는 각자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라면, 그 일관성을 북한에 대해서도 견지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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